따뜻한 교회를 생각하며.. 1
배척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 참 안타깝다. 양극단으로 치우쳐졌다는 것은 갈라서서 다투기를 일삼는 사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부부가 싸우는 모습이랑 비슷한 것도 같다.
세상에서 길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맞이할 준비는 바로 따뜻한 손짓과 나눔, 그리고 소통이다. 교회는 영혼들에게 먹일 양식이 있어야 한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는 떡을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이 따뜻할 뿐만 아니라 손해 보면서까지 죄인을 사랑하셨다. 겉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어 주시고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도 내어 주셨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대해 주시는 분이다.
자신이 아무리 배경 없고 못난 사람이라 느껴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예수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에게도 베푸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거짓이 없으시고 신실하시며 따뜻한 분이시다.
그러한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나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상황을 거부하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스스로에게 만족이 없고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 원인은 "나"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회복되어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배우자일 것이다. 또 부부가 회복되어 서로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면 그 원인은 가족 중 이기적인 어른이거나 교회의 어떤 불합리한 시스템 때문일 것이다. 또 만약 가족과 교회가 회복되어 뜻을 모아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면 사회와 나라의 불공정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나"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의 사랑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인데 만약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는 한 인간이 있다면 이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힘겨운 존재로 호흡하는 중인 것이다.
교회 목회자의 가정은 부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살리는 일에 초점을 둬야 한다. 만약 갑을관계로 사는 부부가 있다면 갑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내가 이기적으로 자존심 세울 때 배우자는 정서적인 학대를 받거나 방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내가 내려놓지 못한 못된 자아 때문에 배우자가 깊은 슬픔의 늪에 빠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을도 역시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기를 거부하는 동안 배우자가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을 동안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당신이 살아갈 세월 내내 울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부모가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양육하는 임무를 갖는 이유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세대이기도 하고 그들도 역시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많이 받은 사랑이 기준이 되어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더 큰 사랑을 베풀려고 하지만, 사랑을 못 받은 아이는 사랑을 베푸는 것 자체가 힘들고 인색하게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사랑의 파이가 큰 사람은 부부관계를 빙산의 일각만이 아닌, 그 아래의 거대한 덩어리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이 목회자와 그 가정은 더욱이 사랑의 기준을 하나님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과 배우자가 이뤄가는 가정이 마치 삼림이 울창하게 자라 동서남북으로 뻗은 산악지대처럼 보여야 한다. 가정이란 사랑의 숲이 먹고 마시고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인지 늘 확인해야 한다.
나를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구할 수만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정말 아름답고 선한 사람일 것이다.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 예수님 같은 사람.
성경이 증거 하는 그분에게서 참 사랑이 나온다. 사랑은 죽은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생명이다. 그분이 나를 살리고 가정과 교회를 살린다는 것을 믿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2020.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