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회, 좋은 성도

인본주의적이란 말.

기쁨이 맘 2020. 11. 9. 23:19

인본주의적이라는 말을 쓰며 모든 일에 경계심을 갖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들의 특징은 교육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세계관을 교육을 통해 주입하여,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삶의 양식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교육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학습자가 기독교 세계관을 터득할 수 있도록 어른이 이끌어줘야 한다.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배워가기 위해 어른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아이를 가르치시는 이는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성숙한 어른과 협력하여 교육하기 원하실 것이다. 어른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어른이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훌륭한 어른이 되어 가도록 돕기 위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권위를 앞세우며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는 언어사용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목자가 되시는 이는 하나님 한 분이시다. 아이들의 삶을 통치하시고 계획대로 이끌어 가시는 이가 어른이 아닌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방불케하는 언어사용과 눈빛으로 아이들에게 겁주고 협박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진 어른의 교육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도록 자유를 보장해주는 부모를 향해 인본주의적이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행동이 공공질서를 무너뜨리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먼저 맞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질서나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른 자신의 눈에 그저 안좋아보인다고 세뇌교육에 들어간다면 아이는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어른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옳다고 믿는다면, 주관적인 생각과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아이를 훈계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관점을 연구한다는 건 깊이있는 학문이지만, 또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신으로 다가가기도 하셨으나 친구나 가족같은 친근한 사람으로서 다가가기도 하셨다. 다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는 욕과 함께 저주를 내리셨다.

하나님이 계획하여 이끄시는 아이의 인생을 존중할 줄 아는 완벽한 어른이 아니라면 아이가 어린시절에 마음 껏 웃고 뛰어놀며 정서를 채워갈 때,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를 향해 엄격한 신의 언어와 눈빛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의 눈에 비친 인본주의적인 모습이 반기독교적이고 비진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순수하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로 돌아와 생각할 줄 아는 지혜를 먼저 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