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를 버리고..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곳에서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아이가 태어나면, 연령대별로 발달상황이 맞는가?를 영유아 검진 통계표를 보며 확인하게 된다. 만약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 아이의 발달상황을 본 부모가 괜한 조바심이 일어나 아이가 기준에 미달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내 아이가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 드는 것을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다른 아이들과 자꾸 비교하면서 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면 그 부모는 벌써 아이를 경쟁자로 대상화한 것이라 보인다.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한 영혼이다. 주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아이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과 속도를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비교당하는 아이는 '나답게' 살지 못하도록 길들여진다. 경쟁과 비교의 시선을 그대로 답습하여 자신과 타인을 경쟁자로 대상화하게 된다. 그러한 아이의 삶은 행복할 수 없다. 그 아이의 마음에는 차별과 혐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하다. 누구보다 잘나서 감사하고, 누구보다 덜 손해 봐서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감사로 볼 수 없다. 그러한 종류의 기도에는 '공평하지 못한 하나님'이라는 숨은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오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자녀를 양육한다면 아마 우월감과 열등감이 동반될 것이고, 자녀도 경쟁자로 대상화할 수 있다.
우월감과 열등감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차별"이다. 차별은 또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본다. 신앙생활을 할 때 오류에 빠지기 쉬운 점이 바로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선민사상"에서 비롯된 우월의식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택하실 때 외모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으시지만 자칭 신앙인이라는 많은 사람들은 외모의 아름다운 것들을 주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잠시, 우월감에 빠지는 것을 본다.
교회가 우월의식에 젖어있을 때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게 되는 것을 본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짓밟힘 당한다는 말씀처럼 사회적으로 골칫거리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우월감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흠 없고 점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한 착각이 바로 십자가 보혈을 흘린 예수께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지적하고 해결해줄 수 있다며 떠든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면 삶의 열매가 없다는 것을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명예와 재물을 의지하면서도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필요할 가능성이 많다. 명예나 재물이 자신을 우월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열등한 존재들이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는 환경인 것이다. 명예와 재물을 섬기는 그들을 신앙인으로 포장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은혜가 아닌 율법을 지키는 일이다.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거짓된 신앙을 버리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진실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