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맘 2020. 10. 28. 03:55

사역자 남편의 아내로 살면서, 아내로서 만족스런 남편의 모습을 보기란 너무 힘든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껏 사역을 펼치는 모습보다는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니 성욕도 그만큼 떨어진다. 매일 나가는 새벽예배는 부부관계의 질을 떨어뜨린다.

부부관계는 부부에게 쉼과 위로를 주는 것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역자 부부가 부부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 내 옆에 함께하고 있는 배우자에게 호기심을 갖고 찬찬히 둘러보고, 반응도 살피고, 만져도 보고, 눈도 마주쳐 보는 일에 소홀하거나 조급하다면 부부는 아마 가정의 주체가 되지 못할 것이다. 부부를 이루는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삶을 나답게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주체는 희미하고 생계를 위해, 자식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라는 생각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부는 하나님께 결코 기쁨이 되지 못할 것 같다.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서로 마주봐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이들고 돈 없으면 주책맞는 노인이라고 욕하는 삭막한 곳이 되어버렸다. 건강에도 하나, 둘 이상이 생기면 마음에도 너무 큰 어려움이 찾아온다. 마치 폐기물처럼 취급하는 독거노인의 삶을 보면서 내가 사는 사회가 사람사는 곳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만 가득할 수 밖에 없는 노후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생긴다.

사람의 몸은 혼자 살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배우자와 어떻게든 잉꼬같이 살아야 한다. 노후를 위해서라도 그렇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발가벗었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고 평안했던 것처럼 회복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금슬 좋은 노부부의 삶이야말로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난 노후를 겪어본 사람은 아니지만, 막연한 믿음이 있다. 경제력이 우선 뒷받침되야 부부관계도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니며, 부부의 몸과 마음이 결합되는 일에 집중하고 서로를 위해준다면 그에 필요한 다른 것들도 따라온다고 믿는 믿음이다. 온전한 연합을 이뤄가는 부부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다. 완전히 다른 존재로 사는 남녀가 부부로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갈고 닦고 다듬으면서 오랜 세월을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부부관계는 그렇듯 어려운 것인데 배우자를 대할 때 무심하게, 소홀하게, 대충하는 식의 태도로 임한다면 희망이 별로 없는 부부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마주볼 때, 희망의 빛 한 줄기도 보이지 않는 부부 사이에는 슬픔과 미움과 원망이 가득할 것이고 그것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괴롭히지 않을까?

나를 통해 비친 못난 배우자의 모습은 곧 나의 마음이다. 그러한 나의 못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원래 에덴동산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듯, 나와 배우자의 에덴을 회복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