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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모도 생각한다

긴장되고 예민해 질때 보는 글

by 기쁨이 맘 2020. 7. 1.

일전에 병치레 하는 아이들을 수발하면서 굉장히 힘들었고 그 여파로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 져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정신을 차릴 때 즈음 내 생활 패턴을 돌아 보게 되었고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 숙면
항상 밀린 살림에, 독박 육아에, 외로움에 지치면 혼자만의 시간이 늘 간절하다. 나를 위한 시간. 그 시간은 늘 육퇴 후 늦은 밤이다. 애들이 잠들면 핸드폰을 만지면서 웹서핑을 하거나, 자료을 찾아보거나, sns를 하는 등 뭔가 나의 마음을 채워줄 만한 것들을 찾는 마음으로 사이버 공간에 빠져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렁 지나간다. 그래서 보통 자는 시간은 두 시.. 세 시..
그런데 사실 그 시간이 숙면 시간 중 가장 보석같은 시간이다. 그 보석같은 시간을 그냥 버리고나면 숙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 결국 맑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 하게 된다. 뇌의 기능도 당연히 떨어지고 버거운 육아를 감당할 힘을 더욱 빼앗겨 버리게 된다.
되도록이면 12시 이전에라도 잠을 자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밤 중에 자꾸 깨는 아기를 키울 때는 통잠을 위해 밤중 수유는 적절한 시기에 맞게 횟수를 줄여 나가면서 분유대신 물로 준다. 아기가 통잠을 일찍 시작해줘야 엄마의 숙면도 편안해진다.  


2. 카페인
나는 아메리카노를 참 좋아하는 1인이다.
그런데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긴장은 이완의 반대말이다. 애들 때문에 눈치보고, 교회에서 눈치보고, 사회에 나가도 불편을 느끼기 쉬운 사모는 어쩌면 일반 사람들보다 긴장을 두배, 세배, 또는 그 이상으로 하기 쉬울 수 있다. 긴장은 스트레스와 직결되어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삶에 활력을 줄 수 있으나 평소에 많은 스트레스로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이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긴장을 덜어줘야 한다. 또한 지뢰처럼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사모의 특수한 환경에 대해서는 자신을 늘 이완시키는 것으로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긴장상태를 잘 견딜 수 있는 힘은 평소에 즐겁고 편안한 생활을 해 두는 것이다. 카페인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면 정신적인 긴장상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능성을 염두해둬야 한다. 팽팽한 긴장의 선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칠 때 끊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더 힘들 수가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스스로 호흡조절이나 취미나 좋은 만남등을 통해 이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완이 뭔지 잘 감이 안온다면 그건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편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3. 자기돌봄
혹시 마음 속에서 끝임없이 자신을 재촉하고 억압하는가?
나는 그런 편에 속한다. 예를 들어 집이 어질러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이건 치워야 해. 이 정도 위생은 내가 엄마인 이상 유지해야해" 등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의무감으로 우울해 하며 정리를 한다. 그런데 그런 나 자신을 가만히 보면 그 모든 일을 의무감으로 완수를 하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껴 또 재촉한다. 아니 독촉한다. 일을 다 마치고 난 후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성취감에 흐뭇해 한 적도 별로 없다. "오늘도 아이의 엄마로써 정말 기특하게 잘 지냈구나, 사모로 사느라 내가 정말 애를 많이 쓰는 구나, 남편의 인색한 스킨쉽에 외롭지 내가 스스로 토닥토닥, 또 허그 해줄게, 쓰담쓰담 해줄게, 주말에 홀로 육아하는 너는 대단해..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겠니. 나니까 그래도 이만큼 버틸 수 있는거야 다른 여자들은 이 상황 맞이하면 다 집 나가서 안돌아와, 아이들이 이렇게 예쁜 미소를 지을 수 있는건 내가 엄마라서 그런거지..^^ 넌 대단해, 하나님의 소중한 딸이야. 사모로, 엄마로 살고 있는 이 삶의 길을 주님이 바라보고 계신다. 걱정마. " 내가 내 손으로 스스로 보듬어 주고 토닥여 주는 것도 같이 해준다. 자신을 재촉만 하지말고 자신이 잘 해낸 일에 대해서는 걸맞는 칭찬과 격려를 입으로 소리내며 할 때 내가 스스로 위안이 된다. 나의 어려움을 내가 먼저 알아차려 주는 일은 스스로를 위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