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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생활 (부부의 성)

부부의 성은 주님이 주신 축복 2

by 기쁨이 맘 2020. 10. 18.

부부생활은 현실 그 자체이다.
좋은 감각인지 불쾌한 감각인지 즉시 안다.
이론만 가지고도 안되고, 기술만 가지고도 안되고, 경제력, 정치력, 생활력이 강하다고 술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현재 내가 배우자에게 잠자리하는 이 곳에서 좋은 감각을 주고 있느냐, 또는 내가 배우자로부터 좋은 감각을 얻고 있느냐?라고 하는 문의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자리가 바로 부부 잠자리이다. 하나님은 부부 잠자리를 축복하셨다. 서로 사랑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누는 일은 축복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잠자리를 대할 때도 하나님 백성답게 잠자리를 대한다. 이론이나 기술로 잠자리를 정복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잠자리를 정복한다. 섬김과 헌신으로 잠자리를 정복한다. 나의 사랑이 잘못된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가 바로 부부 잠자리이다. 일방적인 사랑으로 풀리는 자리가 아니다. 거짓된 모습으로 풀리는 자리가 아니다. 성욕만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도 역시 아니다.
잠자리에서 나의 모습은 주님을 섬기는 나의 삶이 결정체로 드러날 수 있는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배우자에게 (지극히 작은 자)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리이다. 회피하거나 수치스러운 내 모습이 비친다면 주님 앞에서 드러나고 있는 나의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임을 인정하고 엎드려야 한다.
잠자리를 대하는 태도는 영성과 직결된다고 보인다.
겉으로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 보인다고 해고 부부 잠자리에서 몸도 마음도 발가벗은 상태가 될 때 자신의 진짜 신앙 상태가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회피와 수치와 이기심과 불쾌감과 고통 같은 요소들로 잠자리를 채우고 있다면 주님이 축복하신 부부의 잠자리를 왜곡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왜곡된 성 개념은 부부를 온전한 부부로 연합할 수 없게 만든다. 성생활은 신앙생활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 하나님 앞에서의 너,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를 늘 살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의 기본 소양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잠자리는 그러한 자신의 참모습을 주님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무대이자 심판대일 것이다.

배우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의존한다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진다. 특히 교역자 남편을 둔 사모라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고,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관계를 끊고 등지고 싶은 마음도 강할 것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시선은 뭘까? 사랑을 연습할 수 있는 상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나의 신앙도 세워나갈 수 있다. 남을 사랑하려면 주님이 주시는 힘과 주님이 보내주시는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를 통해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런 환경과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렸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사람과 공동체와 환경을 주님께 부르짖어 구해야 한다. 그 기도는 주님의 바람과 딱 맞는 기도제목이라 확신한다. 믿고 구하면 주님은 풍성하게 제공해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배우자도 달라지고 변해야 한다는 거 안다. 하지만, 배우자는 일단 제쳐놓고 나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 내지 두 개만 해보자.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에게 칭찬 10마디 해보자.
손으로 자신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해주는 것도 좋다.
"뭘 더 완벽히 안 해도 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단다. 가만히 있어도 돼. 난 널 완벽하게 지은 게 아니라 사랑스럽게 지었단다."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해도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거다.
거울을 보고 예쁘게 미소 지어 보자. 립스틱도 발라보고 예쁜 머리핀도 꽂아보자. 내 미소와 눈빛은 어느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사랑이고 응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하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배우자를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치고 여유 없는 마음이 점점 넓혀져 갈 때 배우자의 마음이 보이고, 상처가 보이고, 도와야 할 부분이 보이고, 안아줄 마음이 생길 테니 나중 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서 이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극심한 마음의 분노와 염려는 마냥 덮어두려 하지만 말고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서 "나"라는 사람을 깊이 알아가야 한다. 그것이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브라함이 귀한 아들이 우상이 될 뻔했음을 알고 아들을 바치려 했었던 일, 야곱이 세상의 축복을 달라고 얍복강에서 씨름을 하다가 이스라엘의 이름을 얻은 일들은 가만히 지내다가 겪은 일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끊임없이 목도하고 묻고 따지는 과정을 거쳐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답이자 축복을 받은 일이다. 믿음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 바로 내 마음의 분노와 염려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주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 나의 삶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길에서 희로애락이 가득함을 볼 수 있다. 나 스스로 느끼지 못했던, 내 삶 곳곳에 숨겨져 있는 주님의 생명과 사랑을 깨닫는 일은 나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며 삶의 소망이 생기도록 한다. 놀라운 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하신다. 그때 비로소 부부 문제도 회생될 수 있는 소망의 끈을 붙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주님의 선하심을 평생 누렸으면 좋겠다.